인생에서 가장 무모했던 순간을 꼽으라면, 나는 주저 없이 2011년 10월을 말한다.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삶을 뒤로하고 손에 쥔 것은 '온라인 영어 교육 사업'이라는 불확실한 꿈 하나. 그리고 내 곁에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, 그러나 가장 무거운 책임감인 두 아이가 있었다.
겨우 47개월 된 큰애와 이제 막 18개월이 된 막내.
무작정 필리핀에 도착해 한 달을 살아보니 현실은 '로망'이 아니라 '생존'이었다. 한국보다 비싼 전기세 고지서를 받아들었을 때의 그 서늘함이란. 수익은 제로인데 나가는 돈은 끝이 없었다. "정말 대책 없이 왔구나"라는 자책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.
여의도 빌딩 숲에서 가져온 낡은 자전거
내 곁에는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낡은 자전거 한 대가 있었다. 사실 이 녀석은 내 부끄러운 과거와 성실함이 공존하는 물건이었다. 여의도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, 음주 운전으로 차를 몰 수 없게 된 내가 선택한 유일한 출퇴근 수단이자, 여의도 구석구석을 누비며 일터를 달렸던 나의 발이었다.
실수와 반성, 그리고 치열했던 여의도의 삶이 때처럼 묻은 그 자전거를 나는 이 먼 타국까지 싣고 왔다. 그리고 그 자전거는 이제 필리핀에서 내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는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.
자전거 뒷자리에 실은 가장의 절박함
아내가 현지 기업 HR 매니저직 면접을 보게 된 날, 우리 가족의 절박함은 극에 달했다. 택시 한 대 잡히지 않는 낯선 동네에서 나는 다시 그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. 한국에서 가져온 유아용 안장이 달린 그 자전거.
러닝셔츠에 반바지, 그리고 슬리퍼 차림. 그 볼품없는 모습으로 아내를 뒷자리에 태우고 5km를 달렸다. 18개월 된 막내가 앉아 재롱을 떨던 그 안장에, 오늘은 생계를 위해 면접을 보러 가는 아내의 긴장이 실려 있었다. 여의도의 매끄러운 아스팔트를 달리던 자전거는 이제 필리핀의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.
바람에 흩날린 눈물, 그리고 손석희
대로변에서 아내를 겨우 택시에 태워 보내고 돌아오는 길. 혼자가 된 자전거는 너무나 가벼워서 오히려 서글펐다. 페달을 밟는 속도가 올라갈수록, 내 눈가에 고인 물기가 옆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.
'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, 이 어린것들을 데리고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...'
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함에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. 하지만 그때 내 마음을 다잡아준 건 역설적이게도 그 무모함의 시초였던 손석희 앵커의 메시지였다. 당시 우연히 접했던 그의 글, **"재고 따지면 아무것도 못 한다"**는 그 한 마디가 내 심장을 때렸고, 그 말 하나 믿고 저지른 일이었기에 나는 다시 페달을 밟아야만 했다. 만약 그때 그 글을 보지 않았더라면, 나는 여전히 한국에서 안주하며 살고 있었을까?
질렀기에 비로소 시작된 기록
지금 돌아보면 참 기가 막힌 차림에 기가 막힌 상황이었지만, 그날의 눈물은 비겁함이 아니라 '각오'였다. 여의도에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페달을 밟던 그때처럼, 나는 이 낯선 땅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자전거를 굴렸다.
잘한 건 딱 하나, 그냥 질러버렸다는 것. 그 무모함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 이 기록을 남길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. 47개월과 18개월, 그 작은 생명들의 아버지는 그렇게 필리핀의 뜨거운 바람 속에서 손석희의 문장을 되새기며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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